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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는 범죄와의 전쟁 (조직, 부패, 연기)

by 뽀빠이1000 2025. 7. 19.

2012년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한국 영화사에 깊은 인상을 남긴 범죄 누아르 작품입니다. 조직 폭력배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탁, 시대의 혼돈 속 권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영화는 단순한 조폭영화를 넘어서, 대한민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풍자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민식, 하정우 두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윤종빈 감독의 날카로운 연출력은 영화를 10년이 넘은 지금도 다시 회자되게 만드는 주요 요인입니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조직’, ‘부패’, ‘연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영화범죄와의전쟁포스터
다시 뜨는 범죄와의 전쟁 (조직, 부패, 연기)

조직의 생태계와 권력 구조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한 조직범죄의 실체와 그에 얽힌 권력 유착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화 속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은 부산세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지만, 밀수품을 유통하며 조직과 연결고리를 형성합니다. 우연히 조폭 보스 최형배(하정우 분)와 혈연을 내세워 친분을 쌓은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범죄 세계와 결탁하며 세를 불립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단순히 폭력과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인맥’과 ‘정보’, ‘정치권 연결’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영화는 실제로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범죄와의 전쟁’ 캠페인을 배경으로 하면서, 범죄조직과 정치권, 검찰, 경찰이 어떻게 뒤에서 손을 잡고 움직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단지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가 아니라, 일정한 룰과 조직 체계를 갖춘 기업형 범죄단으로 그려지며, 그 생태계의 구조가 매우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최익현이 각종 로비와 인맥을 통해 조직을 확장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은 당시 한국 사회의 ‘백 문화’를 풍자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는 조직 내부의 파벌 다툼, 세력 균형, 외부 세력과의 연합 등을 통해 실제 조폭 세계가 단순하지 않으며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쾌감보다는, 조직의 정치성과 권력 구조를 다룬 이유는 바로 이러한 현실성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영화 속 조직의 모습에서 단지 조폭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았다고 평가하며 이 영화를 기억합니다.

공권력과 부패의 공생 관계

이 영화가 충격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법’을 가장 먼저 어긴다는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익현은 공무원이지만, 밀수품 유통, 뇌물, 로비, 정치 자금 조달 등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조폭 못지않은 ‘거래 기술자’로 거듭납니다. 이러한 부패한 공직자의 형상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대놓고 “나는 검사 사촌도 있고, 판사 친구도 있다”며 법 위에서 군림하려 하고, 실제로 그 말이 먹히는 시대적 분위기를 이용합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폭력과 돈으로만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와의 커넥션, 정치인과의 유착을 통해 조직을 지키고 키워나갑니다.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직을 소탕하는 척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권력 교체에 따른 희생양 찾기와 내부 정리 작업이 이루어지는 아이러니가 그려집니다. 공권력이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한 주제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 대사 중 “너네 아버지 뭐 하시노?”라는 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백’과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구조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윤종빈 감독은 이러한 구조를 단순히 풍자에 그치지 않고, 매우 사실적인 시나리오와 인물 배치로 구현합니다. 조직과 공권력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용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를 배신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부패를 매우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명연기

‘범죄와의 전쟁’이 명작으로 남은 데에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민식은 극 중 최익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기존의 강한 남성상과는 다른, 약하지만 처세술에 능한 인물상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친화력 있고 정 많은 척하지만, 실상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의 연기는 대사보다 표정, 말투, 호흡에서 살아나며, 관객은 그가 말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긴장하거나 웃게 됩니다. 특히 “너희 아버지 뭐 하시니”라는 명대사는 단순한 대사를 넘어서 시대의 상징으로 남았고, 지금도 밈으로 사용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정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연기한 최형배는 냉철하고 계산적인 조직 보스로, 외유내강형 인물입니다. 하정우는 과장되지 않은 연기로 오히려 캐릭터의 무서움과 리더십을 더욱 부각했습니다. 그가 부하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도 단어 하나, 표정 하나로 모든 상황을 장악하는 장면들은 한국 누아르 장르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조진웅, 마동석, 김성균, 곽도원 등 당시에는 조연이었던 배우들이 모두 훗날 주연급으로 성장했을 만큼, 이 영화는 연기력의 향연이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은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연기했고,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 승화시켰습니다. 각 인물의 말투, 복장, 걸음걸이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설계된 이 연기들은 관객들에게 ‘진짜 90년대’를 살아가는 듯한 몰입감을 줬고, 그 덕에 영화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기록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히 과거 조폭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조직, 부패, 연기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우리가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그림자를 더 선명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감상해 보시고, 이미 보셨다면 다시 꺼내보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